◐ 담소자약(談笑自若) ◑
▶ 태연하게 담소를 즐긴다. 위험에 처하였음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
▶ 談 : 말씀 담 / 笑 : 웃을 소 / 自 : 스스로 자 / 若 : 같을 약
▶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무장 감녕(甘寧)은 본래 장강(長江)의 해적 출신이다. 후한 말 군웅이 할거할 때 황조(黃祖) 밑에 들어갔다가 손권의 휘하가 되어 적벽대전 때부터 주유의 참모로서 공을 세웠다. 성정이 불같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였지만, 지략과 용맹이 뛰어났다. 적벽대전에서 수상전(水上戰)에 서투른 조조군을 기습하여 예봉을 꺾은 것도 감녕이었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는 이후 합비(合肥)에 전선을 열고, 틈만 나면 강동을 넘보려 하였다. 오(吳) 나라에서는 정보(程普)를 중심으로 감녕과 여몽(呂蒙) 등에게 군사를 나누어주어 조조군과 대치하였다. 초기에 감녕은 소수의 군사로 환성(晥城)을 공략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오나라 군사는 소요진이라는 곳에서 조조군에게 대패하여, 후퇴한 후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한편 조조는 오나라가 소요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스스로 40만의 대군을 이끌고 합비로 나왔다. 조조의 대군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오나라 군중은 자연히 혼란에 빠졌다. 당시 오나라의 군세는 10만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녕은 태연자약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성내에서 담소를 즐길 뿐이었다.
담소자약(談笑自若)이란 말은 이와 같이 대군의 침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한 감녕의 모습이 후세까지 이야기꺼리가 되면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감녕은 개전하자마자 기병 백 명으로 기습대를 편성하고는 그들과 나란히 앉아 술과 고기로 회식을 한 후 조조군을 기습하여 조조군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조조군을 한바탕 휘몰아치고 돌아왔는데도 그의 군사는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감녕전(甘寧傳)
◐ 독서삼여(讀書三餘) ◑
▶ 독서하기에 알맞은 세 여가--겨울, 밤, 비올 때. 예전에는 책 읽기에 아주 좋은 세 가지 한가한 시간을 독서삼여(讀書三餘)라고 했다. 세 가지 한가한 시간이란 계절 중에서는 '겨울', 하루 중에서는 '밤', 날씨 중에서는 '비 올 때'를 말한다.
▶ 讀 : 읽을 독 / 書 : 책서 / 三 : 석 삼 / 餘 : 남을 여
▶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해가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의 상대가 되었으나, 조조(曺操)의 의심을 받아 한직으로 쫓겨났다. 각처에서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
하고 넌지시 거절하였다. 이에 그 제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니 동우가 다시,
"마땅히 삼여(三餘)로써 책을 읽어야 한다. 겨울은 한해의 나머지요, 밤은 하루의 나머지요, 비는 때의 나머지니라."
며 일러주었다.
[출전] 위략(魏略) / 삼국지(三國誌)
◐ 격장지계(激將之計) ◑
▶ 상대 장수의 감정을 결정적으로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 흔히 성격이 급한 적장을 상대로 사용한다.
▶ 적벽대전 직전에 제갈량이 강동으로 손권을 방문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라고 권하니까 손권이,
"왜 유비는 항복하지 않느냐고." 하니,
"우리 유예주는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사람인데 어찌 항복을 하겠느냐" 고 손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대표적인 격장지계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 혼일사해(混一四海) ◑
▶ 여러 바다를 한데 모아 하나로 함. 즉, 야심가들의 야망인 천하통일.
▶ 混 섞을 혼/ 一 한 일/ 四 넉 사/ 海 바다 해
▶ 1) 황건난이 일어나자 유비, 관우, 장비가 의군을 일으켜 유비의 스승인 노식을 도우러 가던 도중, 조조를 만나 서로 통성명하고 헤어진 후, 유비가
"아아, 정말 세상에는 빼어난 인물도 많구나. 어쩌면 내가 헛되게 산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라고 평하자, 장비가 보기로는 조조는 형편없이 볼품이 없다라고 우기자, 관우가 옆에서,
"사람을 그렇게 외모로만 저울질하는 법이 아니다. 어디 우리 고조께서 수염이 길고 풍성해 혼일사해(混一四海)를 이루셨겠느냐? 회음후 한신이 몸집이 커서 항우를 깨뜨렸겠느냐?"
라고, 장비를 깨우쳤다.
2) 조조가 적벽에서 오나라 주유에게 화공으로 대패하는 장면에서 이문열 삼국지에서 소제목을 "혼일사해(混一四海)의 꿈은 동남풍에 타 버리고"라고 붙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복룡봉추(伏龍鳳雛) ◑
▶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 →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
▶ 제갈량(181∼234)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난세 속에 숙부를 따라 형주(荊州)의 양양(襄陽: 지금의 후베이성 양양현)으로 피난왔는데 숙부가 죽자 양양의 서쪽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정착하였다. 그는 난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 속에서 별로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형주에 와서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다. 유비는 비로소 이때부터 인재를 찾으러 나섰다.
어느 날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사마 휘(司馬徽)에게 시국에 대해 넌지시 묻자 사마휘는, "글만 읽는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은 이곳에 계신 복룡과 봉추가 잘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글에서 복룡봉추가 유래하였고,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량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을 가리킨다. 비록 제갈랑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였다.
이처럼 '복룡봉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주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제갈량을 가리켜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와룡봉추(臥龍鳳雛: 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 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비슷한 말은 기린아(麒麟兒: 재주와 슬기가 탁월한 사람)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촉지(蜀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
◐ 종호귀산(縱虎歸山) ◑
▶ 호랑이를 풀어 놓아 산으로 돌아가게 한다. → 화근(禍根)을 남겨두다.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를 두고 한 말이다. 서주(徐州)의 여포(呂布)와 싸워서 패한 유비는 조조(曹操)를 찾아가 의지하였다. 조조는 유비를 기꺼이 맞아 잔치를 베풀어 환영하고 예주목(豫州牧)에 봉했다. 그러자 조조의 부하 정욱(程昱)이,
"유비는 큰 뜻을 품어, 영웅의 기개가 있습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곽가(郭嘉)가 반대하며 말하기를,
"모처럼 의지해 온 사람을 죽인다면 승상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천하 통일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따랐다.
이듬해 기주(冀州)의 원소(袁紹)에게 그 아우 원술(袁術)이 옥새를 가지고 가므로 황제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자리에 유비도 있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해 조조로부터 탈출할 생각을 하였다. 유비가 조조에게 말하기를,
"원술이 원소를 찾아가려면 반드시 서주를 지나갈 것입니다. 내가 부대를 이끌고 이들을 맞아 쳐서 원술을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하였다. 다음날, 유비는 헌제를 배알하고 출정을 허락 받았다. 조조는 유비에게 군사 5만을 주고 주령과 노소로 하여금 유비를 감시하게 하였다.
유비가 허창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침 외지로 나가 있던 정욱과 곽가 두 사람이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급히 조조를 찾았다. 정욱이 말하였다.
"전에 그를 죽이라 진언하였을 때, 승상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에게 병마를 주는 것은, 호랑이를 풀어 놓아 산으로 돌려보내는[縱虎歸山] 것과 같습니다. 즉시 되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조조가 급히 사람을 보내어 철군을 명하였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다. 이를 기회로 하여 유비는 훗날의 삼국 정립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풍운어수 (風雲魚水) ◑
▶ 바람과 구름, 물고기와 물, 임금과 신하의 아주 가까운 사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군주와 신하의 사이가 친밀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서로 큰 도움이 되는 사이
▶ 유비와 제갈량(공명)과의 관계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견벽청야(堅壁淸野) ◑
▶ 성벽을 굳게 하고 곡식을 모조리 걷어들인다는 뜻으로, 적의 양식 조달을 차단하는 전술의 하나.
▶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어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걷어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이러한 전법은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의 공격을 영원성(寧遠城)을 사수(死守)함으로써 패퇴시켰던 원숭환(袁崇煥)의 견벽청야 작전은 유명하다.
삼국지(三國志)>의 '순욱전(筍彧傳)'에, 위(魏)의 조조(曹操)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呂布)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徐州牧使) 도겸(陶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참모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경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지금은 보리를 걷어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이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견벽청야' 전술을 모를 리 없는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고, 조조는 서주 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기각지세(埼角之勢) ◑
▶ 기각은 사슴을 붙잡을 때 뒤애서는 다리를 붙들고 앞에서는 뿔을 붙잡는다는 뜻으로 전후가 상응하여 적에게 대항함을 이르는 말. 앞뒤에서 적을 몰아치는 기세. 두 장수가 대치하고 있는 기세.
▶ 기(끌 기) 角(뿔 각) 之(갈 지) 勢(기세 세)
▶ 조조에게 패한 여포가 유비에게 의탁해 오자 유비는 소패성에 여포를 보내어 조조의 침략에 대비케 함.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삼고지례(三顧之禮) ◑
▶ 중국 촉한(蜀漢)의 임금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의 초옥(草屋)을 세 번 찾아가 간청하여 드디어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맞아들인 일화에서 나온 말
▶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공명 사이에 있었던 일화에서 나온 얘기다. 조조(曹操)에게 쫓기어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던 유비(劉備)에게 어느 날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친구인 서서(徐庶)가 찾아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제갈공명의 인물됨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한가하게 지내고 있지만 가히 누운 용(와룡, 臥龍)이라 할 만한 인물이므로 유비에게 그를 한번 만나보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장군께서 직접 찾아가시면 만날 수 있지만 그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유비는 세 번이나 그를 찾아간 끝에 그를 만나 힘을 합쳐 한왕조의 부흥에 힘쓰기로 했다.
[출전] 삼국지 촉지(三國志 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가도멸괵 假途滅☆ 혹은 가도벌괵◑
▶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한다는 뜻. (약자의 심리를 찌른다)
▶ '가도벌괵'이란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친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우와 괵 두 나라는 서로 이웃 나라로서, 모두 진(晋)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찍부터 이 두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진왕은 순식(荀息)의 전략을 이용하여 먼저 우공(虞公)에게 좋은 말과 보옥을 보내서 우나라를 매수하고 진나라가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칠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괵나라가 망하게 되자, 우나라도 곧 이어 멸망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적과 자기 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이 만약 적의 침공을 받게 되면 이쪽에서 곧 군사를 동원, 위력을 보이며 구원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곤란에 직면한 약소국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말하고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어느 날 진(秦)나라의 사신이 조나라에 와서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협동하여 이웃 연나라를 칩시다.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연나라 영토의 반을 떼어 주겠습니다."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조나라 왕이 군사를 동원하려 하자 한 신하가 나서서 간했다.
"연나라를 치게 되면 미처 식사도 끝나기 전에 진나라의 군사가 우리 나라를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끼리인 조나라와 연나라가 협동하여 견제하고 있으므로 강대국인 진나라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만약 한쪽 나라가 힘을 잃게 되면 나머지 나라도 쉽게 진나라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떠한 책략도 상대가 먼저 그것을 간파해 버리면 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따라서 책략이란 고도의 '머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가도벌괵'의 책략이 실패한 경우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주유는 남군(南郡)을 총령하게 되자, 더욱 마음에 유비를 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형주를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에게 서천을 치러 갈 테니 형주에 길을 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계략을 눈치챈 제갈량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 이는 옛날 고사에서 비롯 되었다. 주유가 길을 빌려 익주를 치는 척하면서 실로는 형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제갈량이 이미 이를 간파하고 주유를 농락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가치부전 假痴不癲◑
▶ 못난 소처럼 행동한다.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미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서 어리석은 체한다 함은 귀머거리나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모른 체하는 것을 말한다.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공연히 동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체적인 의미는,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매우 냉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우둔한 체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좋고 총명한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침착한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흡사 겨울 뇌운(雷雲)이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고 있듯이……
▶ 삼국 시대, 사마의(司馬懿)는 노쇠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위장 함으로써 정적(政敵)인 조상(曹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기롭게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자는 그 지모로 이름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또 그 용맹으로써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왕과 대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때 국경 부근에서 적의 횃불이 오르고 적이 내습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당황하여 바둑돌을 내던지고 중신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자 대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왕을 제지하면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횃불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바둑을 계속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나 마음이 불안하여 안절부절 못했다.
한참 후에 국경에서 전령(傳令)이 달려와, 적이 기습한 것이 아니고 실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잘못 보고했다고 알려 왔다. 왕은 놀라운 표정으로,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소?" 하고 물었다. 대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웃 나라에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그 나라의 왕이 사냥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후 왕은 그 대신을 경계하여 결국 조정에서 내치고 말았다.
이 고사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한 가지는 그 대신이 적국의 사정에 대한 얘기를 구태여 할 필요 없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꾸몄으면 어리석은 왕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또 하나는 능수능란한 대신을 잘 다룰 능력이 없는 무능한 왕이 유능한 신하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거주양난 去住兩難◑
▶ 가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
▶ 채옹의 딸 채염은 흉노의 좌현왕에게 끌려가서 살았던 적이 있으나, 조조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 돈을 주고 그 녀를 데려왔다. 그녀는 자식을 두고 와야 하는 사정 때문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떠나고 말았다.
참고) 호가십팔박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격안관화 隔岸觀火◑
▶ 강 건너 불구경한다.
'36계' 제9계에는 이 책략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적 내부의 모순이 격화되고 혼란이 일어나 폭란이 생기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적은 분열되어 서로 원수가 되며 마침내는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이것은 바로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유리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의 요건은 적의 내부가 혼란해질 때 경솔히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적들이 일치 단합하여 반격을 해 올 수도 있다. 말하자면 산에 앉아 범싸움을 구경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 '삼국지 연의'에는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두 차례나 격안관화의 계책을 써서 작은 대가로 큰 승리를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원소가 창정 대전에서 참패를 당한 후 마음이 우울하여 병들어 죽게 되었다. 죽기 전에 원소는 유자(遺子) 원상을 계승자로 삼고 대사마로 임명하였다.
조조는 이때 투지가 한창 왕성하여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원씨 형제를 토벌하고 일거에 하북을 평정하려고 기도하였다.
조조의 군사는 파죽지세로 여양을 점령한 다음, 곧장 기주성 아래에 이르렀다. 그러자 원상·원담·원희·고간 등 4로 인마가 합력하여 힘껏 사수하였다.
조조는 연이어 몇 차례 공격을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모사 곽가가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원씨가 큰아들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웠기 때문에 형제간에 권력 싸움이 일어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세가 급하니 서로 구하고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예 군사를 돌려 남쪽으로 가서 유표를 치며 원씨 형제의 변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까 봅니다. 변이 생긴 다음 기주를 친다면 일거에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대로 가후를 남겨 여양을 지키게 하고 조홍으로 관도를 지키게 한 다음, 자신은 곧 군사를 이끌고 유표를 치러 갔다.
과연 조조가 철수하자 장자 원담이 곧 원상과 계승권을 쟁탈하기 위하여 크게 싸우면서 서로 참살하기 시작하였다. 원담은 원상을 이길 수 없게되자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조조는 이 기회를 타서 다시 북진하여 먼저 원담을 죽여 버린 다음, 원희·원상을 차례로 패배시키고 일거에 하북을 점령하였다.
조조가 두 번째로 격안관화의 책략을 쓴 것은 하북을 점령한 후이다. 당시 싸움에 패한 원희·원상은 요동으로 도망하여 공손강에게로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같은 혜안에 감복하여 마지않았다.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 하고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순강은 일찍부터 원씨들이 요동을 병탄할까봐 두려워하였는데 이번에 두 원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 준다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원래 원소가 살았을 때 항상 요동을 병탄할 마음을 품고 있어 공손강은 원씨 가족들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원씨 두 형제가 와서 탁신하니 공손강은 그들을 없애버릴 생각을 품었는데, 조조가 혹시 군사를 끌고와서 요동을 칠까 두려워 두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를 돕게 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공손강은 원희·원상이 요동에 이르자 즉시 그들을 만나보려 하지 않고 먼저 사람을 보내어 조조군의 동정부터 탐지하게 하였다.
세작이 와서 "조조는 역주(易洲)에 군사를 둔쳐 놓고 있는데 요동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하고 회보하자 공손강은 즉시 원희·원상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조조는 칼날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관공삼약 關公三約◑
▶ 관우가 하비에서 조조에게 포위되고는, 그의 투항 제의를 승낙하면서 내세운 세가지 조건.
참고) 관우가 내세운 세가지 조건이란,
첫째, 자신은 한에 투항하는 것이다.
둘째, 감.미부인에게 황숙의 부인의 예에 해당하는 봉록을 주고, 그에 알맞은 예우를 한다.
셋째, 유비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언제든지 달려 간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공심위상 攻心爲上◑
▶ 마음을 공격한다.
▶ '공심위상'이라는 말은 '양양기'에서 처음 볼 수 있다. 건흥 3년(기원 225년), 제갈량이 남정(南征)하려 떠날 때, 마속이 몇십 리를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 해를 함께 일을 해 왔는데 오늘 더욱 좋은 가르침이 없겠소?"
이에 마속이 대답했다.
"남쪽의 소수 민족이 멀고 험한 것을 믿고 불복한 지 이미 오랩니다. 비록 오늘 격파한다 하여도 내일이면 또 불복할 것입니다. 그 동안 공께서 북벌에 온 힘을 다하니 그들은 관리들의 속이 허하고 겁이 많은 줄 알고 이렇게 빨리 반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무리를 몽땅 죽여 후환을 없애자면 어질지 못한 일이고, 또 창졸히 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저 군사를 쓰는 법에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치는 것이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것이 하책인가 합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그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마속의 말을 들은 제갈량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유상(마속)은 내 폐부를 아는구나."
이러한 분석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으로서, 높이 서서 멀리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촉나라에 의한 천하통일 전략면에서 볼 때도 서남을 평정하는 것은 한 차례의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남을 하나의 안정된 후방으로 만듬으로써 앞으로 전 병력을 중원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마속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군사력에만 의거하여 서남의 맹획을 이긴다면 중원의 전쟁이 불리하여지기만 하면 서남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갈량은 이러한 방침을 세우고 그것을 굳게 믿었기에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금칠종의 귀신같은 용병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관문착적 關門捉賊◑
▶ 퇴로를 차단하고 잡는다. 문을 닫고 도적을 잡는다는 것으로, 약한 적에게는 포위 섬멸의 계략을 쓴다. 원뜻은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면 문을 잠가야 잡히게 된다는 뜻이다.
약한 적은 포위해서 완전 섬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을 놓쳐 이를 너무 깊숙히 쫓아갔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다.
'오자(吳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 한 사람이 넓은 들판에 숨었다고 하자. 여기에 비록 천명이 쫓아간다 해도 조마조마한 쪽은 쫓는 쪽이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죽음을 각오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천 명의 군사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제갈공명의 6차북벌에서 사마의를 잡기위해 마대에게 상방곡(호로곡)에 지뢰 등을 설치케하고, 고상에게는 상방곡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목우.유마를 사마의군에게 빼앗기라는 명령을 내리고, 위연에게는 사마의를 상방곡으로 유인하라고 군령을 하달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계책대로 상방곡으로 들어와 갇히고 불과 지뢰로 전멸당하게 되었으나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려 사마의 부자는 살아나고 달아났다.
이때 공명은 "일을 꾀하는 건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억지로는 어찌할 수 없구나" 라고 말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권의지계 權宜之計◑
▶ 때와 장소에 맞는 대처 방법.
▶ 왕윤이 여포와 함께 동탁을 몰아내고 나서 이렇다할 대책을 취하지 않아, 결국엔 얼마 안가 동탁의 부하 이각, 곽사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 금선탈각 金蟬脫殼 ◑
▶ 원형을 그대로 두고 알짜를 빼낸다.
글자의 원뜻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것으로, 진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위세를 보임으로써 우군에게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적에게는 침공할 용기를 갖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은밀히 주력을 딴데로 옮김으로써 적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계략이다.
▶ 항우(項羽)에게 성을 포위당한 유방(劉邦)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항우군에게 성을 포위당해 꼼짝도 못하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항우에게 잡히는 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한 꾀를 생각해내고, 동쪽 성문으로 부녀자들을 나가게 하였다. 그러자 적병들이 구경하려 우루루 몰려든 틈을 타서 서쪽 문으로 탈출했다. 항우가 성안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유방은 도망을 치고 난 뒤였다.
▶ 오장원에서 사마의는 제갈공명이 죽은 것으로 알고 급히 추격하였으나, 제갈량의 마지막 계책인 나무로 만든 공명상을 얹은 수레가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 사마의는 꽁지빠지게 후퇴를 하였다. 이를 이용해 양의와 강유는 촉으로 무사히 후퇴하게 됨.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난득호도 難得糊塗◑
▶ 바보짓하기 어렵다. 바보인척 하기는 어렵다는 뜻.
청나라 때의 서화가이며 문장가인 정섭의 자는 극유이고 호는 판교였다.
그는 "총명하기 어렵고 바보짓하기도 어려운데 총명하면서도 바보가 되기는 더욱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밝으면 벗이 없다." 어떤 때는 지둔한 척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 민감한 것보다 더욱 유리하다.
▶ 공손연의 반란을 평정한 사마의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조예가 술과 계집에 곯아 서른 여섯의 젊은 나이로 죽고, 어린 위주 조방을 보필하던 대장군 조상이 권력을 잡고 세력이 차차 커지자 병을 핑계로 사마소, 사마사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그러나 조상은 사마의가 두려워 청주 자사로 가는 이승에게 문안하는 체 사마의를 찾아보고 그 허실을 살펴보게 했다.
이때 사마의는 병들고 다 죽어가는 행세를 해 그들을 속이고, 결국 조상은 사마의를 경계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사마의의 행동은 난득호도하였으나 이를 잘 극복해 차후 대권을 잡게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노우지독 老牛지犢◑
▶ 늙은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양표가 아들 양수의 죽음 후에 매우 슬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조조는 이러한 양표를 보고는 양수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참고) 양표는 이때 모반죄로 낙향해 살고 있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누세통가 累世通家◑
공융이 이응에게 한 말로, 수 세대에 걸쳐서 집안끼리 알았던 사이라는 뜻. 지난날 공자(孔子)와 노자가 예(禮)에 대하여 논한 일을 떠올린 것이다.
공융은 북해(北海) 태수. 본디 노국 곡부(魯國 曲阜) 사람으로 자는 문거(文擧). 공자의 20세손 태산 도위(泰山都尉) 공주(孔宙)의 아들.
황건 잔당 관해(管亥)의 난을 당하여 태사자(太史慈)의 출현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그를 시켜 평원(平原)으로 유비(劉備)의 일행에게 구원을 청하여 난리를 평정하고, 이에 도겸(陶謙)이 조조의 침공으로 곤경에 빠진 것을 돕게 하였다.
뒤에 조조 수하에 들어 매양 양심있는 바른 말을 하여 미움을 샀으나, 문명과 덕망에 눌리어 얼른 어찌하지는 못하였다. 조조가 신야(新野)로 유비를 치려할 때 역시 바른 말로 간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단기천리 單騎千里◑
▶ 말 하나를 타고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
▶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단도부회 單刀赴會◑
▶ 칼 한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위험한 자리를 뜻한다.
▶ 관우를 초청하여 죽이겠다는 노숙의 궁벽한 꾀에 대해 관우는 청룡도 한자루만 들고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단두장군 斷頭將軍◑
▶ 죽어도 항복할 줄 모르는 장수에 대한 명칭.
▶ 파서관에서 장비에게 패한 엄안이 장비 앞에서 '죽어도 항복할 수 없다. 어서 목을 쳐라'고 하며 오히려 의연함을 보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도리상영 倒履相迎◑
▶ 신을 거꾸로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 왕찬에 대한 설명 중, 그의 스승 격인 채옹이 왕찬의 방문에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서 환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 왕찬(王粲) : 유표(劉表) 막하에 있던 식객. 산양 고평(山陽高平)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 외모는 보잘 것 없었으나, 중랑장(中郞將) 채옹(蔡邕)이 극진히 사랑하던 제자로 상객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유표가 죽은 뒤 형주(荊州)를 바치고 조조에게 항복하기를 극구 권하였다. 그 뒤 관내후(關內侯) 승상연(承相椽)으로 조조의 막하에 들었다. 시중(侍中)에 고관까지 올라가 끝까지 조조를 위하여 충성하다 병으로 죽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도회지술 韜晦之術◑
▶ 자기 재간을 감춘다.
'도회'란 자기의 재간을 감추어 남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도'의 원뜻은 활을 넣어 두는 주머니로서, 들어간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회'는 암흑 또는 은회의 뜻을 가지고 잇는데 회월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 월말은 달이 자취를 감추어 암흑한 날이 되기 때문이다.
▶ 자기 본래의 면모를 숨기기 때문에 자기를 보전하기가 쉽다. 이렇게 되면 합당한 환경에서 상대방이 경계하지 않을 때 그 예정한 기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도회지술은 "현명한 사람은 바탕을 드러내지 않고, 바탕을 드러내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는 속담과 뜻이 아주 가깝다.
이 성구는 실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하다는 도덕적인 면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만, 도회지술은 난세의 호신술을 반영한 것이다.
은나라 주왕(紂王)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연을 벌이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 가는 것도 몰랐다. 그가 좌우 대신들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보내어 왕궁에서 대현인이라고 소문난 기자(箕子)에게 물었다.
기자는 옆에 있는 시종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날짜도 모르니 세상이 변하기는 변하여야 하겠다. 그렇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날짜를 모른다는데 만약 나만 안다고 한다면 모두 나에 대하여 경계심이 생길 것이니, 내가 위험하게 되겠지."
말을 마친 기자는 날짜를 물으러 온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취해서 날짜를 잊어버렸다."
▶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에게 패한후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얼마후, 동승, 왕자복, 충집, 오석, 마등의 연판장에 유비도 함꼐 연서하고 이를 숨기기위해 유비가 머물고 있는 집 뒤뜰에 농사일을 하며 살기를 죽인 일.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무학지배 無學之輩◑
▶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인간이라는 뜻의 모욕적인 말.
▶ 적벽대전시 고육계로 거짓항복하는 편지를 전하러 간 감택이 조조가 잘 속아주지 않자, 조조의 자존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 표현을 쓰고 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미우주무 未雨綢繆◑
▶ 비가 내리기 전에 낡은 문을 손질한다.
▶ 학소는 사마의(司馬疑)의 추천에 의해 중용되어 잡패장군에서 진서장군으로 승진한 후, 3천 병마를 이끌고 진창(陳倉)의 수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가 위나라 태화 2년(228년)으로 제갈공명이 1차 북벌에 실패한 직후이며, 2차 북벌을 감행하기 전이었다.
제갈공명은 출병한 후에 교통의 요충지 진창을 학소라는 낯선 인물이 지키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는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학소와 어려서 친분이 두터웠던 은상(은祥)이라는 자를 보내 투항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제갈량의 권유로 한 번 더 진창을 찾았던 은상은 하마터면 학소가 날리는 화살에 맞을 뻔했다.
"나는 이미 내가 했던 말로 내 마음을 정했소이다. 다시 와서 떠들지 마시오. 속히 돌아간다면 내 화살을 쏘지 않을 것이오!"
이어 제갈량이 몸소 군대를 이낄고 진창성을 공격했으나, 연이어 패하고 말았다. 대병을 동원하면서 운제(雲梯:구름사다리)나 충차(沖車:성문돌파기)를 사용하고도 학소의 강력한 방어진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20여 일이 지나자 위나라의 구원군이 전선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3천의 적은 병력으로 20일 가량이나 제갈량의 진공을 막아내 위나라가 승리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학소는 이듬해 봄에 중병에 걸렸으며, 그 해 제갈량이 3차 북벌을 감행하던 즈음에 병사(病死)하고 말았다.
학소와 같이 적군이 침공하기 전에 이중성벽 등 만반의 준비를 갗추는 것을 말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반객위주 反客爲主◑
▶ 주객을 전도시킨다.
'반객위주(反客爲主)'란 손님이 주인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때를 보아 실력을 강화하고 남의 군대를 겸병하여 객군을 주군으로 바꾸는 계략을 말한다.
▶ '삼국지'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촉나라의 전략가 법정(法正)이 황충(黃忠)에게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하후연(夏侯淵)은 경박한 사나이입니다. 무용뿐이지 계략이 없습니다. 군사를 격려하여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여 그를 유인하면 반드시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객을 바꾸어 주가 되는 계략입니다."
황충은 이 반객위주의 계략에 따라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며칠 동안 쉬었다가 또 전진하고 했다.
하후연은 이 소식을 듣고 황충을 공격하려 했다.
"이건 반객위주의 계략입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싸우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장합이 한사코 말렸으나 하후연은 끝내 듣지 않았다.
과연 하후연은 황충에게 유인되어 마침내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반객위주라는 말의 본뜻은 주인의 대접이 서툴러 오히려 손님이 대접을 한다는 뜻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관련
◐반신역당 反臣逆當◑
▶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기 직전, 낙양의 부호들의 금전을 약탈하기 위해서 여포로 하여금 이 네 글자가 적힌 깃발을 들고 다니라고 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백리지재 百里之才◑
▶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병귀신속 兵貴神速◑
▶ 병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신속함이 제일이라는 뜻.
▶ 병법에 나와있는 구절로서, 제갈량, 조조등이 말하곤 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보수설한 報讐雪恨◑
▶ 원수를 갚고 한을 씻는다는 뜻.
▶ 조조의 부친 조숭이 도겸의 장수 장개에게 죽임을 당하자, 조조는 이에 크게 격분하여 이 글귀를 내걸고 도겸을 치러 나섰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부저추신 釜底抽薪◑
▶ 적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어도 적의 기세를 꺾을 수는 있다. 즉, 유(柔)하게 하는 것으로 능히 강(剛)함을 이기는 방법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부저추신'이란 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는 뜻으로, "장작을 꺼내 물이 끓는 것을 그치게 하고, 풀을 먼저 베고 그 뿌리를 뽑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즉, 적의 계략을 근본적으로 부수어 버리라는 뜻이다.
▶ 후한 초에 오한(吳漢)이 대사마였을 때, 한밤중에 적이 진지를 습격해 온 일이 있었다.
그 때 온 부대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데, 오직 오한 만은 태연히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군사들은 이러한 태연스런 오한의 태도를 보고 곧 평정을 되찾았다.
뒤이어 오한은 지체없이 정예부대를 가려 뽑아 밤을 이용, 반격을 감행하여 적을 무찔렀다. 이것이 직접 적과 부닥치지 않고 계략으로 적의 기세를 꺾는 방법이다.
▶ 하비태수가 우이의 승인 손견에게 장독목(張獨目)이란 도적의 토벌을 의뢰하자, 손견은 골짜기에서 넓은 들판으로 도적떼를 유인하기 위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무질서하게 쉬고 있는 것 처럼 보여 그들을 끌어내어 장독목 일당을 토벌함.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부지소운 不知所云◑
▶ 제갈량의 전출사표에 나오며,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
전 문장을 보면 '눈물이 눈 앞을 가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충심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수 있게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비위부전 非危不戰◑
▶ 위급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비득불용'과 마찬가지로 싸움을 신중히 한다는 뜻이다.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위부전'의 전제는 물론 국가의 이익이다.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면 싸우고 부합되지 않으면 중지해야 한다.
'투필부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무릇 군사를 일으켜 싸운 것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목적은 국가의 화란의 뿌리를 뽑고 민중의 폭란을 평정하기 위한 것이지, 민중을 참살하고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삼방순욱 三房荀彧◑
▶ 조조가 순욱을 세번 방문한 끝에 그를 얻었다는 데에서 비롯된 고사성어.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상옥추제 上屋抽梯◑
▶ 나무에 올려놓은 후 흔들어라.
일부러 파탄지경에 이른 것 처럼 보여 적에게 좋은 조건을 줌으로써 아군 깊숙이 들어오도록 유인한 다음 선두부대와 후위부대를 끊어 적의 주력부대를 헤어날 수 없는 사지에 빠뜨린다. 즉, 적의 식욕을 이용해 독이 든 고기를 먹게하여 죽이는 것이다.
'사(唆)'란 적에게 조그마한 이익을 주어 유인하는 것이다. 만약 조그마한 이익만 주고 유인한 다음 다른 계략을 쓰지 않는다면 적은 미적거리며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옥추제'의 계책을 쓸 때에는 반드시 적이 흔쾌히 이 쪽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도록 유혹하듯이 상대가 미적거리지 않고 이쪽의 뜻대로 하게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소향무적 所向無敵◑
▶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 조조가 형주를 얻고는 기고만장해 져서 손권에게 투항하라는 뜻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유가 이에 반대하면서,
'우리 군은 가는 곳마다 이기고 대등하게 대적한 자들이 없었습니다'고 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수상개화 樹上開花 ◑
▶ 꽃이 없는 나무에 조화를 붙여 마치 화려한 모습을 보이듯이 병력수가 적더라도 많이 보이게끔 치장하여 적을 압도하라는 것이다.
원문에 보면 남의 병력을 빌려 진지를 구축하면 약소한 병력으로도 강대한 군대처럼 보이게 된다.
큰 기러기가 높이 날아오를 때 떨어뜨리는 깃털은 예식에 서 장식품으로 쓸 수 있다는 논리처럼 기세를 타야 세 과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무는 ㅂㄴ디 꽃이 없는 나무지만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다.
즉 비단이나 종이로 오리고 색칠하여 조화을 만들고 나뭇가지에 그것을 붙이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는 쉽게 그 진위를 알아차릴 수 없다.
아무리 빈약한 가지뿐인 나무일지라도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붙이고 나뭇가지를 서로 결합시켜 찬란한 빛을 발하도록 완벽한 꽃나무를 만들어라.
이것은 곧 우군의 본진에 정예부대를 포진시켜 왕성한 기백과 웅장한 위세를 과시하여 적을 제압하라는 것이다.
▶ 중랑장 노식이 패전과 지구전을 이유로 조정으로 잡혀가고, 동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하자 유비형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황건적에 쫓기는 동탁을 구해 줬으나 동탁으로 부터 백신(벼슬자리가 없슴)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자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곧 마음을 돌려먹고 주전장군의 막하로 들어가 장보토벌의 선봉이 되어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이 떄 장보는 수상개화의 요술을 부려 관군을 쫓아냈으나 유비는 돼지와 양과 개의 피를 이용해 술법을 깨뜨리고 대승을 거두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순수견양 順手牽羊◑
▶ 작은 이익일지라도 손이 닿기만 하면 챙겨라.
원문에 보면,
"조그마한 틈이라고 생기면 놓치지 말고 이용해야 하고 보잘 것없는 이익이라고 생기면 있는 힘을 다해 손에 넣어라. 적의 조그마한 실수가 아군에게는 승리의 발판이 된다.
대군이 움직일 때는 작은 헛점과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면 전쟁을 치루지 않고도 상대로부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법은 승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 범수가 진소왕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대왕께서 이웃 나라를 치게 되면 한 치의 땅을 얻오고 대왕의 땅이 되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득촌즉왕지촌이요 득척역왕지척'이라는 계책이다.
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철저히 챙겨 이득을 얻으라는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이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소홀히 넘기지 말아야 한다. 장사의 비결 같은 말이지만 싸움에서도 필요 불가결한 자세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신은구의 新恩久義◑
▶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관우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조의 호의에 감사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를 잊지 않았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언과기실 言過其實◑
▶ 실제보다 말이 더 앞선다는 뜻.
▶ 제갈량이 마속을 높이 평가하자, 이에 대해 유비가 '그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대단한게 없으므로 그를 높이 기용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오관육참 五關六斬◑
▶ 다섯 관문에서 여섯 명을 벤다는 뜻.
▶ 관우가 원소 밑에 있던 유비를 만나기 위해 그를 가로막는 다섯 관문의 장수 여섯을 베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고사성어.
서주에서 쉽게 유비를 물리친 조조는 관우가 있는 하비성으로 군사를 몰았다.
이때 관우는 유비의 일가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조조의 항복 권유를 받고 세가지 조건 - 자신의 항복은 조조에게가 아니라 천자에 대한 항복이라는 것, 유비 식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것 - 을 제시하고 그에게 투항한다.
조조는 유비에게 향한 관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주고,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각종 진귀한 물건을 주는 등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가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조조를 떠난다.
이 때 관우는 다섯 관문을 지나며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조조의 부하장수 여섯 명의 목을 벤다.
관우가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안 조조는 장료를 보내 관우의 무사통과를 지시하지만, 이미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희생을 당한 뒤였다. 이에 격분한 하후돈이 관우를 죽이려고 하지만 조조는,
"무릇 사람이란 자신이 섬겨야 하는 주인은 따로 있는 법"이라며 관우와의 약속을 지키고있다.
이 일을 연의삼국지에서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이라고 기술하여 유비를 향한 관우의 변함없는 의리만을 찬양하고 있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일신시담 一身是膽◑
▶ 온몸이 쓸개라는 뜻.
▶ 당양, 사두진, 봉명산 등에서 용맹을 떨친 조운(趙雲)의 대담함을 일컫는 말.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절영지회 折纓之會◑
▶ 갓끈을 끊는 연회라는 뜻. 옛 고사에서 비롯됨.
▶ 이유가 이 고사를 예로 들어 동탁에게 간언하길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절천야차 折天夜叉◑
▶ 하늘을 끊는 악귀라는 뜻.
▶ 황건적 장수 하만의 별칭이다. 하나 그 별명에는 맞지 않게 조조의 장수 조홍에게 당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지상매괴 指桑罵槐◑
▶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듯이 상대에게 위협을 주어 복종하게 만드는 계략이다.
▶ 원문에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겁을 주어 복속시키려면 경고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방법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한다.
적절한 강경책을 쓰면 지지를 받게 되고 과격한 수단을 쓰면 꼽짝 못하고 복종한다.
흔쾌히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부대를 통솔하여 적과 싸울 때 그 부대를 잘 다루어서 지휘에 복종하게 하는 것보다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여 회유하는 것이 간편하고 빠른 방법이지만 그 방법은 도리어 의심을 살 염려가 있다.
그럴 때는 고의로 그 부대를 꾸짖는 것으로써 은연중에 경고를 한다. 경고란 그 부대의 복종을 유도하기 위한 일동의 사전 정지 작업이다.
이것은 적절한 강경책과 상대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정도의 압력으로 그들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하를 다루는 요령인 것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진복론천 秦宓論天◑
▶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
여기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집사광익 集思廣益◑
▶ 뜻을 모아야 큰 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제갈량이 동료와 부하들에게 편지를 쓸 때 이렇게 말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차도살인 借刀殺人◑
▶ 칼을 빌려 남을 죽인다는 뜻. 적의 실체가 이미 밝혀졌는 데도 동맹군의 태도가 모호할 때는 동맹군을 끌어들여 적을 무찔러야 이쪽의 힘을 아낄 수 있다는 계책.
▶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이 노나라를 돕기 위해 제나라와 오나라를 서로 싸우게 하고 다시 진나라로 가서 오와 싸우도록 했다.
결국 힘이 빠진 오나라는 격파당하고 제나라는 혼란에 처하게 되었으며 진나라는 강국이 되어 노나라의 후견국이 되었다.
남의 힘을 빌어 이렇듯 적을 물리치고 자기의 입장을 지키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계책을 '차도살인'의 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계책에 의하여 국가의 존망과 안위가 결정된 예는 상당히 많다.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으며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이 경우 '살인' 이 목적이라면 '차도'는 방법이다. 이때 방법은 갖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다. 적의 총체적인 역량일 수도 있고 혹은 재물일 수도 있으며 때로 상호간에 갈등을 조성, 증폭시키는 계략일 수도 있다.
▶ 조조가 예형을 형주 유표에게 보내었으나, 유표도 예형을 황조에게 보내 결국 황조가 예형을 죽였다.(3-14)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창서칭상 倉舒秤象◑
▶ 조조의 아들 창서가 오에서 보내온 코끼리의 무게를 잰 고사를 말한다.
참고) 조창서는 이름이 충이고 창서는 그의 자이다. 조조가 그의 아들중 가장 총애할만큼 재주가 남달랐지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빛을 보지 못 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청경우독 淸耕雨讀◑
▶ 맑을 땐 밭을 갈고 비가 올 땐 책을 읽는다.
▶ 제갈량이 융중에서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천계일봉 千鷄一鳳◑
▶ 닭 천 마리 중에 봉황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
▶ 황건적 장수인 절천야차 하만이 조조 군영을 농락하며 등장하자, 조홍이 이렇게 외치며 그와 맞섰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탄금주적 彈琴走賊◑
▶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낸다는 뜻.
▶ 제갈량이 가정전에서 패한 후 서성에서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거문고 울림으로 손쉽게 적을 쫓아냈다.
참고) 이때 사용된 계책이 공성지계이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투서기기 投鼠忌器◑
▶ 쥐를 잡다가 독을 깬다는 뜻.
▶ 허전의 사냥에서 조조의 방자한 행동을 목격한 관우가 칼을 들어 그를 베려 할 때, 유비가 가만히 그를 만류하며 이말을 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할수기포 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 동관에서 마초와 맞닥뜨린 조조가 그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비단 도포를 입은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도포를 버리고,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수염을 잘랐다고 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호부견자 虎父犬子◑
▶ 호랑이 아들에 개 아들이라는 말로,
▶ 촉을 차지하여 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우매한 아들 유선을 비교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홍문연회 鴻門의會◑
▶ 유비와 조조가 영웅에 대하여 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관우와 장비가 들이 닥치면서 '칼춤이라도 추어보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라고 하자, 조조는 그들의 충심에 감복하면서, '이곳은 홍문의 연회가 아니니 칼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회귤고사 懷橘故事◑
▶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유) 육적회귤(陸績懷橘)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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